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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단편

(단편) 2년만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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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정이 들썩거렸다. 소리로 들리지는 않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이다. 마치 예전 좋아했던 탄노이 스피커로 밥 재즈를 들을때, 베이스에서 느껴지는 그런 진동이다. 물론 그때와는 너무 상황이 달라, 마일스 데이비스가 줬던 감동까지 느낄 수는 없지만.


   갇혀 지낸지 2년이나 지났다. 아니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다. 얼마전까지는 디지털 기기에 나타나는 숫자들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전력소모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최소한의 전기만 사용하고 있다. 시간이 멈춘지 일주일은 된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게 지내보는게 여러가지 (실현가능한) 꿈들 중 하나 였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나니 답답하다. '시간과 정신의 방' 같은 평온한 장소는 그저 판타지소설의 소재일 뿐인가.


"방금 그 소리는 뭐였을까?"

조그만 소리에도 잘 놀라는 여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말했다.


"글쎄... 뭔가 지나간 것 같긴한데..."

우리가 있는 장소는 지하에 만들어진 방공호다. 지하 10m 아래(아마도) 만들어져 있어서 여기에 있으면 외부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씩 뭔가 진동이 느껴지기는 한다.


"아마도 동물 무리떼가 지나간 게 아닐까? 이제 2년이나 지났으니 바깥 상황도 많이 변했겠지..."

사실 나도 잘 모르니 이렇게 밖에 대답할 수 밖에.


"근데 있잖아, 우리 언제 밖으로 나가? 이제 남은 전기도 얼마 없고 외부와 연결이 끊어진지 너무 오래자나. 물론, 우리는 이렇게 안전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동생이 말했다.


"글쎄... 조만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너무 답답하긴 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2년 넘게 지하에서 생활하면서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걸 보면.


   모르긴 해도 2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을 거다. 내가 본 마지막 지구(라고 표현하면 뭔가 거창하지만)의 모습은 '각 잡은 고층 빌딩들 사이를 흐르고 있는 혼돈(늘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인것으로만 기억된다.


'인상학파적 재능이 있더라면 내가 느낀 그런 모습을 고흐의 해바라기 처럼 그려낼 수 있을텐데...' 

괜한 잡념이 인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일'이 터져 버린거다. 그때가 2012년 이었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종말론적 계시가 실현되었을 수도 있고, 어떤 미치광이가 핵 버튼을 눌러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궁지에 처하면 상상할 수 없는 짓을 저질러 버리기도 하니까.


   내가 기억하는 거라곤, 언제 만든지도 모르는 이 방공호에 지인이 데려와 주셨고, 그 후로 2주가 넘게(이 때에는 디지털시계를 사용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크고 작은 진동이 들렸을 뿐(정확히는 느껴졌을 뿐)이다. 가끔 우리 공간 전체가 흐드러지듯한 크고 작은 진동파를 느끼기도 했다. 대부분은 경미한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진 못했다. 우리 공간에 직접적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 걸 보면, 큰 지진은 일어나진 않은듯 하다.


   사람들이 보고싶다. 딱히 누가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메트로폴리탄의 냄새가 그립긴 하다. 매연과 소음, 북적대는 인파로 늘 고생했던 좋지 않은 기억이 있지만, 그 북적대는 이들 속에서 마시는 스타벅스의 커피한잔이 그립다.


"이제 그만 자자. 음악도 못 듣고 시간도 흐르지 않으니 여기서 지낸다는 게 부담이 되긴하다. 일단 우리 몸을 먼저 추스려야지. 그리고 조만간 밖으로 나갈 계획을 세워 보자. 환경공해든 방사능이든 2년이 지났으니 이제 괜찮겠지.... 아까 그 진동이 동물무리떼라면 그야말로 희소식인거고."

아직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응,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어차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계가 있잖아. 나머지는 운에 맡겨보는 거지 뭐."

동생은 의외로 담대하게 말했다. 이 녀석은 가끔 이런 엉뚱한 면이 있어서 좋다.


"그래, 그럼 잘자."


"응, 굿나잇"


'밖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세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대답해 줄 이가 없으니 그냥 받아들여야지...

문득 십 수년전 읽은 Sci-FI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소행성과의 충돌을 막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인류 최후의 날을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날의 전날 밤, 주인공은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의 이마에 굿나잇 키스를 해주고, 부인과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키스를 나누었다. '세상의 마지막 날'을 그야말로 소소히 보낸 주인공이 멋있었다.


...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닥친거다. 마치 풀지못한 어드벤처 게임의 매뉴얼을 보듯 그 단편 소설을 떠올리며, 나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쉬운 건 단 한가지.

'내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멋있게 굿나잇 키스를 하며 작별인사를 할 텐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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